[DBR]카뱅 돌풍… 기존 은행의 관료문화 걷어낸게 비결
이 글은 동아비지니스리뷰(DBR) 232호 (2017년 9월 Issue 1)에 게재된 이머징의 리포트 ” 위기경영 선포하고, 특별 기구 만들고? 조직통제만으론 문제 못 풀어”의 주요 내용을 동아일보에서 축약하여 편집,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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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때 답답함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다. 각종 서류와 복잡한 절차 때문이다. 대출을 신청한 사람은 깨알같이 쓰인 약정 내용이나 정보에 압도당하고 만다. 오죽하면 은행 직원들이 나서 형광펜으로 꼭 체크해야 하는 항목만 동그라미로 표시해줄까. 적지 않은 이들은 서류 속 내용을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그저 은행 직원이 시키는 대로 사인해버리고 만다.
지금껏 은행에서 겪은 절차는 매우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카카오뱅크’라는 새로운 금융서비스가 등장하기 전까지 말이다. 카카오뱅크는 설립 일주일 만에 151만 건의 계좌를 만들었다. 대형 은행들이 무려 9년이란 시간을 들여 확보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이용자를 단 7일 만에 모은 것이다.
물론 카카오뱅크는 전 국민의 90%가 사용하는 카카오톡을 플랫폼으로 활용한 덕을 톡톡히 봤다. 하지만 사람들이 열광한 것은 카카오뱅크의 혁신적인 서비스였다. 카카오뱅크는 은행 방문이나 복잡한 서류 작성 절차를 없앴다. 간단한 지문인식을 통해 통장 개설, 계좌이체, 대출과 같은 핵심 은행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기존 은행은 카카오뱅크 같은 혁신을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단순히 역량의 문제라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조직의 ‘불안’이라는 심리에서 이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은행은 돈을 다루는 업무를 한다. 그만큼 정확성과 안전성이 중요하다. 업무 과정에서 실수가 발생할 경우 큰 사고로 이어진다. 이 불안을 덜기 위해 은행 조직은 복잡한 절차와 결재 라인을 통해 역할을 세분화하고 책임을 분산했다. 대출을 담당한 직원들에게 자신의 상사에게 관련 내용을 보고하게 함으로서 대출 사고에 대한 불안을 덜었다. 상사들은 또 자신이 결제한 내용에 대해서만 책임을 졌다.
복잡한 절차와 비효율성에 대한 고객들의 불만은 점점 커졌지만 은행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외부 환경의 변화에 무뎌지는 사이, 은행 업계는 무방비 상태로 카카오뱅크에 ‘공격’을 당했다.
사실 국내 기업들이 조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관료적인 조직문화를 택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조직에서 드러나는 자연스러운 결과일 수도 있다.
영국의 정신분석학자인 이자벨 멘지스 라이스가 수행한 연구에서도 이 내용이 드러난다. 그가 연구한 한 병원의 수련 간호사들은 일을 비효율적일 만큼 세분화해 업무를 ‘체크리스트’로 관리했다. 각 간호사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 수행하면 됐다. 그러다보니 간호사들은 어떤 환자가 어디가 아픈지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었다. 수면제 투약을 담당하는 간호사가 자고 있는 환자를 깨워 약을 주는 해프닝까지 발생했다. 삶과 죽음이 오가기에 극단적인 스트레스 상황이 존재하는 병원 조직이 불안에 대한 방어기제로 일을 지나치게 관료화한 결과다.
관료화는 기업들의 새로운 불안 요소로 등장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선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경쟁의 판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주어진 시장에서 경쟁자와 비슷한 방식으로 경쟁하면 됐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선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경쟁자가 나타나 기업의 비즈니스를 위협할 수 있다. 새로운 방식으로 조직 불안을 해결해야 하는 이유다.
우선 조직의 불안을 냉정하게 분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불안의 실체가 무엇인지, 그 원인은 무엇인지 면밀하게 파악해야 한다. 불면증을 치료하는 것은 수면제가 아닌 심리적 불안을 제거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또 불안과 함께 공생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불안요소가 있다고 하더라도 먼저 실행하고 그 불안요소가 현실화됐을 때 보완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카카오뱅크가 대출사고와 같은 불안을 몰랐을 리 없다. 하지만 이들은 디지털 기술과 플랫폼으로 서비스를 개선하겠다는 결심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반면 카카오뱅크 등장 이후 우리나라 은행업계가 부랴부랴 고민한 대책은 인사제도나 모바일 앱 개선이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조직 변화는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경민 이머징 공동대표 kmlee@emerging.co.kr
정리=이미영 기자 mylee@donga.com
동아일보 원문보기 : http://news.donga.com/3/all/20170917/86371797/1
DBR 원문보기: http://dbr.donga.com/article/view/1203/article_no/82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