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2022년 3월 Issue 1, 340호] 장은지 대표 칼럼 |
Article at a Glance
모든 리더가 혁신에 올라타는 것은 아니다. 관성을 고집하며 조직을 망치는 리더들도 많다. 이들은 혁신의 필요를 부인하고, “해봤는데 안 되더라”며 방어적 태도를 보이며, 나아가 변화를 적극적으로 저지한다. 혁신에 적극 나선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나도 모르게 혁신을 저해하는 리더들도 적지 않다. ‘혁신의 반역자’가 되지 않으려면 리더는 내적 민첩성(Inner Agility)을 길러야 한다. 자신의 취약성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며 조직 밖에서 수평적 태도로 새로운 사람들과 교류해야 한다. 목적지가 아닌 방향을 제시하는 리더십을 실천하며 때로는 멈춰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에게 도전적 질문을 던짐으로써 내적 민첩성을 방해하는 솔직한 내면의 목소리와 대면해야 한다.
복잡계의 시대가 두려운 리더들
우리는 변화가 가속화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모든 기업은 디지털화로 인한 중대한 변화에 직면했고 산업의 경계는 무너지고 융복합되고 있다. 데이터, 알고리즘 및 인공지능은 기업의 예측 방식과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완전히 변화시켰다. 기업들은 비즈니스 모델을 재고하고, 조직을 재설계하며, 지난 130년 동안 이어오던 통제 관리 방식을 버리고 민첩한(Agile) 관리 방식으로의 변화를 꾀함으로써 이에 대응하고 있다. 실로 오늘날의 세상은 복잡계(Complex system) 그 자체다.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경영 시스템 속에서 경영자와 리더들의 대응력과 판단력, 그리고 본질적인 리더십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변화를 겪고 있는 기업의 최전선, 리더들을 돕는 일을 해오면서 한 가지 양상을 관찰하고 있다. 이들의 대응 양상이 기업별로, 리더별로도 참으로 큰 간극과 차이를 나타낸다는 점이다. 무섭게 변화를 받아들이고 소화하며 변신을 거듭 꾀하는 놀라운 경영자가 있는 반면 변화의 흐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기존의 관점, 관행, 관성에 머무는 리더들이 조직을 망치는 사례도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저항은 때때로 개인 단위가 아니라 기존 조직의 운영 방식으로부터 수혜를 받고 있는 리더들의 집단적 움직임으로 나타나기까지 한다. 변화가 현재의 베네핏(benefit)을 앗아갈 것이라는 두려움이 극대화되는 순간이다.
필자는 그간의 관찰에 근거해 기업 혁신 과정에 대한 참여 또는 급격한 변화를 요구받는 리더들이 보이는 부정적 반응 유형을 세 가지로 분류했다.
- 부인형 리더
“그런 혁신은 우리 조직과 맞지 않아”
부인(否認)형 리더는 혁신의 당위성이나 방향성을 부정한다. 급격한 변화를 수용하다가는 큰 실패를 맞을 수 있다고 여기며 변화에 대한 잘못된 의사결정을 지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이 흔히 하는 발언이 있다. “그러한 혁신의 방향은 우리 조직이나 산업과 맞지 않는다”는 말이다. 부인형 리더는 특히 오랜 기간 사업을 탄탄하게 이어온 시장 내 경쟁 우위 기업 또는 시장 진입이 어렵고 규제 및 제도의 울타리가 공고했던 금융 또는 공기업 등의 리더군에서 자주 발견된다.몇 년 전 금융지주사 및 은행의 경영진과 리더들이 보인 인식과 태도가 대표적인 예다. 이들은 카카오뱅크, 토스 등 핀테크 기업이 등장해 모바일 송금 시장을 잠식해 나가며 무섭게 성장하자 관심을 보였다. 필자는 주로 경영진에게 핀테크 기업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일하는지, 이들 기업의 속도와 애자일 방식이 이전 관료적/위계적 조직의 일하는 방식과 어떻게 다른지를 강의와 자문, 컨설팅 등을 통해 전달했다.그러나 이들은 2019년까지 급부상하는 핀테크 기업들의 존재가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금융산업에 존재하는 규제 때문에 급속한 변화는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는 디지털라이제이션(Digitalization)의 변화 속도는 놀랍지만 그러한 변화가 금융업에 본질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당분간 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핀테크 기업들이 일하는 방식은 매우 위험하고, 그 방식이 기성 금융사에는 맞지 않는다고 여겼다. 몇몇 금융사에서는 핀테크 기업과 다수의 협업을 시도했다가 갈등이 불거져 협약이 결렬되거나 진척되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러한 불협화음의 과정에서 흘러나온 기존 금융사 측 인사들의 언급은 한결같았다. 핀테크 사람들과 일해 보니 “무모하고 버릇없으며 그렇게 가다가는 큰일 난다” 싶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기존 금융사 리더들 입장에선 빠르고 짧은 사이클(cycle) 안에서 실패할 수 있는 시도들을 리스크를 무릅쓰고 전개해 나가는 핀테크 기업의 일하는 방식이 너무나 이질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금융사 리더들의 생각과 달리 혁신의 잠식 속도는 너무나도 빠르게 전개됐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1년 10월까지 폐쇄된 국내 은행 점포는 총 1507곳이다. 폐쇄된 점포의 60% 이상을 4대 시중은행이 차지했다. 또한 최근 4년간 희망퇴직으로 짐을 싼 은행원은 5044명에 달한다. 반면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 네이버파이낸셜, 토스 등 핀테크 기업들은 인재를 끌어안으며 미친 듯이 성장하고 있다.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의 시가총액은 도합 37조 원으로 국내 굴지의 시중은행인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의 시가총액을 합친 것보다 더 큰 규모로 올라섰다. 또한 토스는 국내에서 세 번째로 인터넷 은행 인가를 받는 데 성공한 이후 보험, 증권 등 사업 영역으로도 초고속으로 확장해나가고 있다.
2. 방어형 리더
“이미 해봤는데 소용없더라고”
변화와 혁신에 부정적인 리더들의 또 다른 모습은 방어적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방어형 리더들은 변화의 흐름에 대해 “이미 과거에 다 시도했던 일”이며 “해봤는데 안 되더라”고 자주 발언한다. 혁신이란 게 사실 대단치 않은 일이며 본인의 선지자적 관점으로 보건대 결국 소용없을 것이라는 비판적 관점을 견지한다. 이들은 혁신에 대한 자신의 비판을 마치 자신이 모든 것 위에 군림하는 듯한 유능함과 등치로 여긴다. 한편 혁신이 정말로 성과를 낸다면 과거의 혁신을 이끌었던 자신의 무능함이 드러날까 봐 두려운 마음도 품고 있다.
방어형 리더의 대표적 예는 최근 가속화되고 있는 수평 조직으로의 변화 흐름에 대해 많은 리더가 보이는 반응이다. 많은 기업이 과거 몇 년간 직급을 5단계에서 3단계로 통합해오더니 작년부터는 아예 직급을 없애 버리고 ‘님’ 호칭과 존댓말 문화를 범용화하는 사례가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를 시도하는 기업 내 리더들과 인터뷰를 하다 보면 이 흐름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얼마 가지 않아 예전처럼 돌아가고 말 것이다’라고 회의적으로 언급하는 임원들을 상당수 만나게 된다. 국내 몇몇 기업이 10여 년 전에 직급 파괴 변화를 시도했다가 다시 수직적 직급 체계와 호칭으로 돌아갔다는 것을 이들은 매우 좋은 근거로 활용한다.
방어형 리더들은 여전히 조직에는 위계와 통제가 필요하며 수평 조직으로 변화하려는 시도는 단순한 유행이나 MZ세대 구성원을 존중하려는 척하는 비효율적 선택이라고 믿는다. 우리 회사가 변해 봤자 거래처 회사에서 직급을 물어보며 위계적 응대를 요구하면 다 소용없게 된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들은 수평 조직으로 변화하는 근본적 이유가 수직적/사일로 조직에서 발생하는 소통의 복잡성 비용을 줄여 가속화된 복잡계 경영 환경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선택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저 과거의 기준을 가지고 관성적 관점에서 이러한 변화를 바라보는 것이다.
- 저항형 리더
“이건 우리 조직의 생존을 위협하는 일이라고”
마지막 세 번째 유형은 저항형 리더다. 이들은 변화를 부인하거나 방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변화를 저지하고자 한다. 또한 변화의 주체를 적(敵)으로 삼는다. 변화의 흐름으로 인해 기존 조직에서의 포지션이나 수행 중에 있는 일에 대한 권한이 침해받거나 현재 리더로서 지배적 지위로부터 누리는 효익을 없앨 수 있다는 위협을 느낄 때 리더들은 저항을 택하게 된다. 다만 저항형 리더가 사리사욕을 적극적으로 탐한다고는 전제할 수 없다. 혁신이 가져다주는 회사나 고객 차원의 가치를 고려하지 못한 채 자신과 자신이 이끄는 부서의 생존과 영달의 관점에 갇혀 위험을 회피하고자 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행동이라고 해석하는 게 타당하다.특히 저항형 리더는 혁신의 과정에서 순혈주의가 깨지고 외부로부터 강력한 변화의 동력이나 인재가 유입될 때 쉽게 드러난다. 최근 대기업들을 비롯한 많은 조직에서 공채 위주의 채용과 승진, 보임이 사라지고 외부 출신 CEO나 1980년대 수장이 다수 등장하면서 이러한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버거워 하는 리더들의 모습이 자주 목격되고 있다.
필자가 만난 국내 대표적 기업의 40대 초반 부사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는 오너가 파격 스카우트한 외부 인재였다. 초고속 승진을 거듭해 수년 만에 부사장에 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일 본인이 내리는 의사결정에 대해 “우리 회사에서는 원래 그러지 않습니다” “우리 조직에서 그렇게 하면 힘들어집니다” 같은 관성적 저항에 매우 자주 부딪힌다고 토로했다. 사실 이러한 일은 비일비재하다. 강력한 관리와 통제 권한을 가지고 있던 조직(조심스럽지만 보통 인사 및 재경 부서가 이에 해당한다)이 변화의 흐름을 은근히 거부하거나 수동공격적 태도를 취함으로써 과거의 방식과 영향력을 유지하려고 힘쓰는 것이 자주 목격된다. 반대로 접근하자면 관리와 통제의 정점에 있는 조직 리더들이 본질적인 내적 변화를 이뤄내고 변화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조직 혁신의 성공 가능성은 현저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자기 의심과 실패에 민감한 리더의 멘탈리티
그렇다면 지금까지 성공 가도를 달려온 똑똑한 리더들이 정작 절실한 위기 속에선 좀처럼 변화에 올라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변화에 저항하는 리더의 멘탈리티에는 무엇이 자리한 걸까? 주요하게는 다음의 세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의심과 불신 때문이다. 아무리 똑똑한 리더라도 기존의 성공 방식에서 벗어난 방향 앞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믿지 못하게 된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일하는 방식이 요구되고 다양한 인재가 등장하는 과정에서 기존 리더는 갑자기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된 느낌을 받게 된다.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불편함이 생겨나고, 그렇기에 더 이상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을 거라고, 예전처럼 유능함을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리더의 객관적 자기 인식(Self-awareness)이 너무나도 중요하다. 객관적이고 명확한 자기 인식은 리더십의 제1 근간이다. 위기 및 변화 상황에서 스스로에 대한 강한 믿음과 취약성에 대한 개방성과 유연성을 가지도록 도와준다.
리더 스스로가 자신의 마음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객관적 자기 인식은 더더욱 중요하다. 하버드대의 로버트 케건(Robert Kegan) 교수와 리사 라히(Lisa Lahey)에 따르면2변화에 따른 문제는 개개인의 심리적 문제가 결합해 나타나는 것으로 방어기제에 대한 이해 없이 도식적으로 변화를 이끌어내긴 어렵다. 변화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변화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도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 채 자신의 에너지를 변화를 거부하는 곳에 사용하는 선택(Competing commitment, 경쟁적 커미트먼트)을 하게 된다. 리더는 변화에 저항하는 팔로워들을 어떻게 이끌 것인가 뿐만 아니라 리더 자신도 모르게 변화를 거부하는 숨겨진 이유를 알아채고 자신을 경계하면서 움직여 나가야 한다.
둘째, 리더가 현재의 역할에 함몰돼 긴급한 것과 중요한 것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리더에겐 매일 해내야 할 업무와 성과 과제가 주어진다. 그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회사에 중요한 과제를 충분히 고민하고 참여할 여유가 없다. 복잡하고 정신없는 일상에 빠져 정작 중요한 역할을 놓친다. 그래서 혁신에선 ‘청소’가 중요하다. 혁신을 위해 무엇을 더하기보다는 오히려 하고 있는 일들 중 속도와 혁신을 저해하는, 형식적이고 보여 주기식 일들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과감하게 없애 나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우선순위 혼동은 무섭게 휘몰아치는 혁신의 한가운데에 있는 리더들에게 치명적 문제를 안긴다. 특히 폭발적 성장을 경험하고 있는 유니콘 스타트업들에서 이런 문제가 두드러진다. 리더십 연습이 충분하지 않은, 준비되지 못한 리더는 우선순위에 대해 명확하게 판단해주기 쉽지 않다. 당장에는 임기응변으로 대응이 가능하겠지만 중장기적 문제들을 바로 지금 고민하며 풀어나가지 않으면 머지않아 성장을 저해하는 심각한 기술 부채3, 조직적 인프라 취약의 문제에 봉착하고 만다. 대부분의 혁신에서 긴급하진 않지만 정말로 중요한 과제는 인재/리더의 육성, 기술 인프라, 지식 공유와 재생산이 가능한 프로세스 정립 등이다. 이러한 과제는 성장 중인 기업의 발목을 잡는 단골 요인이다.
셋째, 리더의 경쟁 구도 중심 사고와 그 아래 자리한 고정 마인드세트(fixed mindset) 때문이다. 인간의 능력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다는 고정 마인드세트를 탑재한 사람은 실패를 자신의 능력 부족을 그대로 드러내는 치명적 증거라고 생각하고 실패할 수 있는 시도 자체를 회피한다. 실패에 매우 민감한 이들은 자신이 이미 갖춘 역량을 증명할 수 있는 일만 취하고 새로운 도전을 피한다. 외부의 피드백을 매우 개인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일부러 부정적 피드백을 무시하거나 회피한다.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모멸감을 느끼며 자신에 대한 도전, 시비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혁신의 과정에서 새로운 인재가 부각되고 성공하는 모습에 위협을 느낀다.
이러한 심리의 배경에는 타인의 인정을 지나치게 중시하고 의존하는 마음이 있다. 고정 마인드세트를 지닌 사람은 주변에 능력 있는 사람으로 보이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혁신 과정에서 드러날 수 있는 본인의 취약성이나 실수, 실패를 아예 차단하려고 한다.
혁신지향형 리더가 되기 위한 훈련법
자신도 모르게 혁신에 저항하며 관행에 안주하려는 리더는 어떻게 이러한 자신을 알아차리고 경계할 수 있을까? 관성에 머무르지 않고 지속적으로 성장하며 혁신에 동참하는 리더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떠한 연습을 해야 할까?
글로벌 컨설팅사 맥킨지는 지난 몇 년간 지속돼 온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과정에 있는 유수 기업들을 혁신에 성공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으로 나눴다.4 그리고 두 그룹 간 차이를 만들어낸 이유에 대해 연구했다. 그 결과 두 그룹을 가르는 여러 요인 중 가장 절대적인 차별화 요인은 바로 혁신을 이끄는 리더들의 ‘내적 민첩성(Inner Agility)’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물론 단시간 내에 없던 내적 민첩성을 만들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의 뇌는 본능적으로 정지 상태를 추구하고, 익숙한 방향으로 생각하려는 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선견지명과 공감, 창조적인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에 우리는 보수적이고 경직된 습관에 빠진다.
그러나 내적 민첩성은 연습을 통해 충분히 개발될 수 있다. 물론 지속적으로 훈련해야 하지만 이 정도의 노력 없이 오늘과 같은 복잡계 시대 속에서 균형추를 가지고 혁신을 타고 오르는 리더십을 갖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혁신지향형 리더로 성장할 수 있는 멘탈과 태도를 갖추는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첫째, 조직 밖으로 나가는 훈련을 한다.
리더 스스로 ‘내가 모를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혁신의 과정에서 자신의 취약성이 드러날 수 있다는 사실을 유연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어디서나 나올 수 있고, 경쟁자는 내가 속한 산업이 아닌 경계 산업에서도 나올 수 있다. 단일 기술 제품이 비즈니스를 재편하는 일도 벌어진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혁신이란 내가 지금까지 전혀 경험하지 못한, 생면부지의 장소에 가서 보고 듣고 경험하며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독창적이며 예상치 못한 획기적 아이디어의 발견을 장려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작용한다. 조직 안에만 머무르려 하지 말고 과감히 조직 바깥, 지금까지 만난 적 없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를 구축하고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고자 노력해야 한다. 새로 구축한 관계에서는 지금까지 인정받아온 자신의 권위와 명성을 내려놓고 대등한 관계 속에서 귀를 여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숙제는 일견 쉬워 보이지만 매일의 업무에 함몰된 리더들에게 가장 어려운 연습 과제가 될 것이다.
둘째, 목적지 말고 방향을 제시하도록 노력한다.
혁신의 흐름에서 내가 혹시라도 리듬을 놓치는 것은 아닐까, 주요 의사결정에서 배제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은 접어두자. 자신의 강점에 대해 확신하되 모든 상황에서 디테일까지 장악하고 통제, 관리하려는 욕구를 접어두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어디로 가는가(where to go)’와 그 이유(why)를 제시하는 리더가 돼야 한다. 조직 구성원들에게 A지점에서 B지점으로 이동하라고 지시하는 대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여정을 함께하되 비전을 가지고 팀을 이끌어가는 리더십을 보여주도록 노력해야 한다.
셋째, 멈추어 생각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다.
구성원들과 함께 걷고 있지만 리더는 나무와 숲을 함께 아우르는 시각을 가져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혁신의 과정에서 주어지는 문제는 지금까지 누구도 풀지 못했던 것들이다. 쉽지 않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리더는 조급함을 갖기보다는 과감히 멈추어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필요에 따라서는 일단 그 상황에서 벗어나는 ‘단절’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가령 산책이나 운동처럼 잠시 일을 잊고 비장한 감정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신만의 리추얼을 만들어보는 것이다. 이러한 리추얼이 도움이 되는 이유는 우리의 뇌가 감사하게도 단절의 순간에도 해당 문제를 계속 처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급함이나 비장함에서 잠시 벗어났다가 다시 문제로 돌아올 때, 우리는 더 창의적이고 홀가분하게 문제해결에 임할 수 있는 심리적 상태를 갖게 된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 샤워하고 나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것도 같은 원리라고 할 수 있다.
‘내면 들여다보기’가 가장 중요
덧붙여 새로운 아이디어를 고안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결해야 할 질문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해보는 연습도 도움이 된다. 기존 방식대로 생각하는 멘탈 모델을 해제시키기 위해 자신에게 완전히 다른 도전적 질문을 던지는 연습을 해보자.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리스크에 묶여 문제를 과장되게 확대해석하고 있지 않은지 되묻자. 더불어 나와 반대의 관점을 가진 사람들의 입장에서 이해해보는 훈련을 하자. 이러한 과정을 통해 리더는 자신의 내적 민첩성을 방해하는 솔직한 내면의 목소리를 만나게 된다. 결국 외부의 혁신을 이끌기 위해서는 리더 스스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훈련이 가장 중요하다는 역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장은지 이머징리더십인터벤션즈 대표 ejchang@emerging.co.kr
필자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대에서 MBA를 취득했다. 글로벌 전략컨설팅회사에서 컨설턴트를 지냈고 맥킨지 리더십센터장을 맡았다. 국내외 유수 기업을 대상으로 20여 년간 조직과 리더십에 대한 자문, 컨설팅, 코칭을 해왔다. 저서로는 『리셋하고 리드하라’(2021)』 『리더를 위한 멘탈수업(202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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