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의 심리학
이머징의 파트너인 이용석 전문의의 인터뷰가 실린 기사입니다.
조선일보 / 2017. 7. 22
[Why] 갑자기 욱해서 “사장 불러!”… 을의 숨은 얼굴 ‘갑질’
국내 한 대기업 부장으로 있는 40대 중반 남성 A씨는 최근 가족과 함께 외식을 했다가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놀랐다. 종업원이 늦게 온 다른 테이블에 먼저 음식을 가져다준 게 화근이었다. 평소라면 “우리도 어서 가져다 주세요” 한마디 하고 넘어갈 일이었다. 그날 A씨는 종업원에게 “왜 나부터 안 줘?”라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놀란 가족들이 A씨를 뜯어말릴 때까지 그는 “사장 부르라”며 집요하게 종업원을 괴롭혔다. 그의 느닷없는 ‘갑질’에 가족들은 상처받았고 스스로 교양인이라 생각했던 A씨 역시 충격을 받았다. 요즘 작은 일에 욱하고 이유 없이 화가 치밀어 잠도 잘 못 잤던 A씨는 신경정신과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평범한 당신의 다른 얼굴
지난 13일 이장한 종근당 회장이 수행기사들에게 폭언한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갑질 논란에 다시 한번 불이 붙었다. 지난해 미스터피자 창업주인 정우현 회장이 경비원을 폭행한 사실이 알려졌을 때, 2014년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이 이른바 ‘땅콩 회항’을 했을 때도 여론은 들끓었다. 사태는 모두 해당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
갑질을 일삼는 사람들의 내면엔 어떤 괴물이 있을까? 전문가 다수는 “갑질은 돈과 권력을 가진 특권층, 혹은 성격상 장애가 있는 일부 사람만 하는 게 아니다. 평범한 사람도 손님 입장에서 충분히 가해자가 될 정도로 갑질은 일상적 현상”이라고 했다.
식당에서 갑질을 했던 A씨는 최근 직장 내 승진에서 미끄러진 일이 있었다.
이용석 정신건강의학 전문의는 A씨 사례에 대해 “갑질을 하는 사람 내면을 파헤쳐 보면 무기력과 좌절감, 불안이 자리 잡고 있다. 자신이 지닌 부정적 감정을 남에게 던져버리는 게 갑질의 본질이다. A씨는 승진 탈락 후 위축된 상황에서 남에게 권력을 휘둘러 우월감을 확인하려고 한 것”이라고 했다. 다른 사람을 무능하고 게으르다고 몰아붙이는 사람의 상당수는 스스로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경찰은 지난해 9월부터 100일간 ‘갑질 횡포 특별단속’을 했다. 적발된 6000여건을 분석했더니 갑질 가해자는 ’40~50대(57.7%)’ ‘남성(89.6%)’ ‘무직·일용직(27.1%)’이 많았다. 이용석 전문의는 “현재 한국 중년 남성은 성취지향성이 강하고 남자는 과묵해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에서 자라 정서적 불안을 건강하게 풀어내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며 “병원을 찾는 중년 남성 환자 상당수가 건강검진 결과나 인사이동 등 일상적 변화가 원인이 돼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호소한다. 힘이 약해졌다고 느낄 때 다른 성별과 연령대보다 쉽게 무너지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김학진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그 욕구가 과도한 사람은 자신이 무시당하는 듯한 상황에서 갑질을 하게 된다”며 “갑질 가해자 중 무직 비율이 높은 이유도 인정 욕구를 채우고자 하는 심리 때문”이라고 했다.
원문보기: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sid1=001&oid=023&aid=00032993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