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대하는 자세

얼마 전, 매우 성실하고 실행력이 뛰어난 리더십을 가진 것으로 정평이 난 한 고위 임원을 만났다. 최근 경영환경의 어려움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가 이런 언급을 했다. “뭐 저 같은 마름(지주를 대리하여 소작권을 관리하는 사람)이야 조직이 원하는 대로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할 뿐이지요.” 그는 아마도 자신의 변함없는 성실성에 대해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게 표현하려고 했을 것이나, 나는 중세의 위계를 떠올리게 하는 단어와 표현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지난 16일부터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됐다.

많은 기업과 직장인들이 이 법이 금지하고 있는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와 범위에 대해 혼란스럽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 그러나 정작 기업과 리더들이 고민해야 할 부분은 이 법의 테두리 내에서 최대한 허용될 수 있는 범위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변화가 왜 지금 이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지 본질을 살피고 이를 포함한 포괄적이고 적극적인 기업 문화 혁신을 한발 앞서 만들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임원의 사례처럼, 이러한 시대적 패러다임 변화 상황을 인지하거나 수용하지 못한 채로 혼란스러워하는 경영자들도 많은 듯하다. 요약하자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다음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이다.

첫째, 과거 조직 중심의 사고에서 개인이 중시되는 조직으로의 변화다. 과거에는 기업의 성공을 위해 조직의 위계를 사용하여 개인의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고 그러한 모습을 미덕으로 여겨왔다. 자신을 `마름`으로 정의하는 경영자는 위에서 요구하는 대로, 자신의 희생과 동일한 모습을 다른 이들에게 강조해오며 위계에 의한 자신의 성공을 만들어왔을 것이다. 그러나 저성장과 복잡계 경영환경 속에서 기업은 과거 같은 성장을 보장할 수 없고, 희생의 대가로 개인에게 평생 직장을 보장하기도 어렵다. 이런 환경 속에서는 전체·집단·조직에 대한 희생이 더 이상 명분을 얻기 어렵다. 필자는 조직문화 진단 시, `현재 우리 회사에서 가장 구현되지 못하고 있는 가치`이자 `앞으로 가장 우리 회사가 추구했으면 하는 가치`를 묻는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국내 100여 개 기업 중 90%가 넘는 대부분의 기업에서 구성원들은 한결같이 그 답으로 `존중`을 꼽았다. 이것은 조직의 부속품이 아니라, 온전한 개인으로서 직장에서 존중받고자 하는 개인의 욕구가 최대치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두 번째 변화는 바로 구성원의 신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정신적 고통도 기업이 적극적으로 보살펴야 하는 범위로 들어왔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와 기업은 성장 일변도의 패러다임 속에서 먹고살기 바쁜 나머지 물리적 환경의 개선 외에 정신적 문제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러나 글로벌 선진 기업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조직원들의 신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건강과 정서적인 측면을 모두 포괄한 `웰니스(Wellness)` 개념에 기반해 접근하고 있다. 앞으로의 경영환경에 있어 단위시간 투입에 따른 노동생산성 증대보다 중요한 것은 파괴적 혁신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이며, 이는 실패가 허용될 수 있는 조직에 속해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이 좌우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 변화는 연령과 성별, 직위 등으로 조직 내 가시적·암묵적으로 서열화되었던 위계의 해체를 의미한다. 관료주의의 쇠퇴, 권력의 분권화는 이미 시대적 조류다. 이 과정에서 괴롭힘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논쟁은 즉, 지금까지의 조직 내 권력자·관리자와 비권력자 사이의 인지감수성의 격차가 그만큼 클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300개 국내 기업의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의 주요 원인으로 `직장 예절이나 개인 시간 등에 대한 세대간 인식 차`(35%)가 압도적으로 꼽혔다고 한다. 애매하다고 해서 “함부로 말도 못 걸겠다”며 비꼬는 관리자라면, 스스로의 인지감수성에 대해 되돌아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장은지 이머징리더십인터벤션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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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뉴스 원문보기 : https://www.mk.co.kr/opinion/contributors/view/2019/07/567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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